DAIRY

이산(李祘)과 손잡고 수원화성 걷기

나개린 2016. 10. 3. 00:42

10월의 연휴 첫 날. 초가을이 풍기는 새로운 계절의 냄새가 열린 창문을 타고 들어와 나를 깨웠다.

 

창밖으로 보이는 가을 하늘이 참 청명하다고 생각했고, 내일부터는 남은 연휴 내리 비소식이 있다고 했다.

 

나는 하릴없이 신발을 신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선 내가 정한 행선지는 수원화성이었다.

 

몇 년 전 가본 기억이 있지만, 오늘은 좀 새로운 생각으로 이 곳을 걸어 볼 참이었다.

 

 

 

 

 

수원화성에는 5개의 문이 있는데, 각각 팔달문’, ‘화서문’, ‘장안문’, ‘화홍문’, ‘창룡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나는 동쪽에 위치한 창룡문을 통해 성곽 안으로 들어갔다.

 

 

햇볕 좋은 토요일임을 증명하듯 수원화성은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연을 날리는 아이들부터 아예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는 연인들까지 모두 가을소풍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창룡문을 시작으로 천천히 성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창룡문에서 동북공심돈, 방화수류정을 거쳐 화홍문까지만 느리게 걷기로 마음먹었다.

 

 

 

 

 

 

 

 

 

 '창룡문'은 푸른 용이 다닌다는 뜻으로, 오방위 중 동쪽을 지키는 동물인 청룡과 푸른 색의 의미를 담아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발걸음을 옮기며 수원화성을 축조한 어진 임금 정조를 떠올렸다.

 

이산(李祘), 임금의 이름이었다.

 

그는 현명하고 어진 임금이자 비운의 세자, 사도세자의 아들이었다.

 

어린 이산은 뒤주에 갇혀 죽어가는 아버지를 여드레 동안 눈물로 지켜봤다. 그리고 영조가 승하한 엿새 후에 경희궁에서 즉위하면서 말했다.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즉위 후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에 이장하고 화성을 쌓아 당대의 새로운 신도시를 건립했다.

 

수원화성은 붕당정치를 끝맺고 왕권을 강화 할 목적, 백성들을 이주시킬 목적, 방어목적 등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해주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그리울 때면 자주 수원화성을 걷곤 했다고 한다.

 

승자의 기록인 '역사'가 말하는 사도세자와, 아들 이산이 떠올리는 아버지 사도세자는 어떤 의미로 보나 다름이 분명하다.

 

임금 정조가 아닌, 아들 이산은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가눌 길이 없어 성곽을 따라 하릴없이 걸었을 것이다.

 

 

나도 함께 성곽을 따라 걸으며 어느 새 200년 전의 이산과 손을 잡고 있었다.

 

 

 

 

 

 

 

 

 

동북공심돈

 

 

 

 

 

 

 

 

해가 저문 수원화성의 모습은 더 아름다웠다. 저녁이면 조명이 점등되면서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서쪽으로 계속 걷다보면 나의 마지막 코스인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이 나온다. 나란히 붙어있는 이 곳은 수원팔경 중 하나인 만큼 절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화홍문의 7개의 수문 사이로는 시원한 수원천이 흐르고, 방화수류정 앞의 연못이 거울처럼 정자를 비추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야경 속에서 이산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1795,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 씨의 환갑을 기념해 서울 창덕궁에서 출발해 사도세자가 묻힌 화성의 현륭원까지 이르는 8일간의 능행차를 거행했다.

 

일곱째 날, 사도세자의 참배를 마치고 수원을 떠나는 정조의 발걸음은 더디기만 했다.

 

서울로 올라가는 지지대고개에 서서 정조는 이렇게 말했다.

 

 

지지대고개에 오면 떠나기 싫어 거동을 멈추고 한참 동안 남쪽을 바라보게 된다.”

 

 

 

 

 

 

 

 

  방화수류정의 야경

 

 

 

 

 

짧았던 산책을 마치고, 나는 수원화성을 떠나며 내내 오른편에 잡고 있던 이산의 손을 놓았다.

 

200년 전, 나와 같은 길을 따라 걸었을 그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다.

 

오늘, 수원화성에서 나눈 소중한 대화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